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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勉庵) 최익현 (崔益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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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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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6세 때 입학하여 9세 때 김기현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고 14세때 벽계에 은퇴한 성리학의 거두 이항로의 문하에서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으며 이항로의 '애군여부 우국여가'의 정신, 즉 애국과 호국의 정신을 배웠다. 1855년 명경과에 급제하여 장령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여 여러 차례 귀양살이를 하였고, 1876년 최익현은 나라에 글을 올려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에 반대하다가 다시 흑산도로 귀양을 갔다. 최익현은 1879년 귀양에서 풀려 난 뒤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다 그 뒤  단발령 (상투를 없애고 머리를  짧게 깎도록 한 명령)에  반대하여  다시 옥살이를 하였다.

1898년 경기도 관찰사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거절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이듬해에 전라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남과 충청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셨다.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쓰시마 섬으로 끌려간 뒤,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하여 단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업 적 : 수봉관,지방관,언관 등을 역임하며 강직성을 드러내 불의,부정을 척결하여, 관명을 날리고, 경복궁 중건의 중지, 당백전(當百錢)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失政)을 상소 올려, 고종이 친정(親政)을 하게 하였다. 구한말 항일구국운동의 선봉이자 유림(儒林)의 최고봉으로 일제에 저항하다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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