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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가 함석헌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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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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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1901∼1989)은 평북 용천 사람으로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관립 평양고보 졸업반 때 3.1만세사건에 적극 참여한 후 3.1만세사건에 참여한 잘못을 뉘우치라는 학교당국의 '반성문' 제출조건을 거부하고 자퇴하였다.

그 후, 평안도 정주에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에 편입하여 남강 이승훈, 다석 유영모를 스승으로 모시고 삶과 민족과 역사에 눈을 떴다.

그는 일본 동경사범학교에 입학하고, 동경 유학시절 우찌무라 간죠의 무교회 성서연구모임에 김교신과 더불어 참여하였다. 1928년 귀국 후에는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교사로 강단에 섰으며, 1933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집필하였다.

그는 일제시대에 여러 차례 감옥생활을 경험하였으나 감옥을 '인생대학'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화두는 '민족, 종교, 과학'으로, 민족사랑, 진리사랑, 이성적 사고를 강조하였다.

조국해방 후, 해방정국에서 함석헌은 평북문교부장관에 추대되기는 했으나 소련군에 의해 수감되었고 1947년 남하하였다.

1950년 6. 25한국전쟁을 계기로 함석헌의 사상은 또 한번의 껍질을 벗고 근본적인 깊이와 높이를 더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의 밑바탕에는 늘 성서사상 곧 기독교적인 요소가 있으나 정통주의 기독교의 교리주의나 형식주의에 반대하고 노장사상, 공맹사상, 화엄사상 등에도 깊은 종교적 진리와 구원의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를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개창하고, 말년에 그의 퀘이커에 가입하여 평화운동에 진력하였다.

남하한 후 함석헌은 자유당정권, 군사정부치하에서 민주주의 운동, 인권운동측면에서'재야의 중심인물'로서 시민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고 장준하선생이 발행하던 월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등 중요한 문필 활동을 하였다.

1970년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그의 독특한 '씨알사상'을 본격적으로 서술하기 시작했고, 1976년 소위 '명동 3.1 사건'에 참여하여 윤보선, 김대중, 정일형, 윤반웅, 문익환, 안병무, 이문영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민주수호 양심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함석헌은 종교시 300여편을 남긴 탁월한 종교시인이며 문필가였지만, 그의 핵심은 행동하는 지성인, 진리구도의 종교사상가, 거짓과 비겁에 저항하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그의 중심사상은 '씨알사상'으로 대표되는데 '씨알'은 민중중에서도 순수한 사람됨을 지향하는 순수 우리말 표현이다. 그의 역사관은 영웅사관이거나 유물사관이거나 유심사관이 아니고, '역사의 담지자의 주인은 씨알이다.'고 보는 민중사관이다.

그는 1989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총체적으로 볼 때, 함석헌은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된 후, 주체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소화 흡수하여 동양의 고전과 대화시키면서 독창적이고 토착화된 기독교 사상을 이룩하였다.

그는 역사를 가르친 교육자였고 인생의 진리를 추구한 종교사상가였으며 언론인이면서 민주인권운동가였다(문광부자료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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