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
뉴스인물  |  inmul@newsinmu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9.30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은 면적은 44만 9964㎢ (한반도의 2.4배), 인구는900만여명이다. 
정식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이며 수도는 스톡홀름이고, 언어는 게르만계 노르드어의 하나인 스웨덴어가 공용어이며 각종 방언이 있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균일화되어 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산맥에 있는 긴 국경으로 서쪽은 노르웨이와 접하고, 북동쪽은 토르네강(江)을 경계로 핀란드와 접한다. 동쪽은 보트니아만(灣)과 발트해(海)를 사이에 두고 핀란드·독립국가연합과 대하며, 남쪽은 카테가트 해협과 순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한다.

기후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동일 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타 지역보다 기온은 높으며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북부의 노를란드 지역은 1년 중 6 개월 동안 눈에 덮여 있으며, 여름의 평균기온은 14.7℃, 겨울의 평균기온은 -12.8℃으로 하루종일 영하권에 머물게 된다. 또한 6월부터 7월까지는 백야현상으로 수주일에 걸쳐 태양이 24시간 지속되기도 한다. 스웨덴 국토의 7분의 1이 북극권에 속한다. 이에 비해 남부지역은 겨울이 짧으며 날씨도 대체로 온화하다.

수도인 스톡홀름은 발트해로부터 약 30km 거슬러 올라온 멜라렌호(湖) 동쪽에 있으며, 시가는 많은 반도와 작은 섬 위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수면과 운하 때문에 흔히 ‘북구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항구·공항·지하철·버스망이 완비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정칟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다. 스톡홀름은 1250년에 스타덴섬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그 무렵의 교회와 시장의 광장, 불규칙한 도로 등이 남아 있다.

   
▲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 왕비 실비아

1255년경부터는 한자동맹(Hansa League)에 속하는 항만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그 당시에는 독일계 시민의 세력이 컸다. 1520년에는 스웨덴 국왕을 겸하고 있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가 반대세력을 탄압하여 스웨덴계 귀족을 학살하였다. 이를 계기로 구스타브 바사(후일의 구스타프 1세) 아래 결속한 세력은 1523년에 한자동맹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17세기에는 크리스티나 여왕 치하에서 시의 정비가 진행되었으며, 수도였던 웁살라 대신 수도가 되어 북유럽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급속히 발전해 나갔다. 그 특징은 바로크풍의 건물에 잘 나타나 있다. 1850년부터는 제3의 발전기에 들어갔으며, 낭만적인 전원도시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발전하였다.

1950년부터는 대규모의 도시계획으로 도심지를 헐어 새로운 비즈니스가(街)와 공원을 건설하였다. 특히 빈민가가 전혀 없는 것이 스톡홀름의 자랑이다. 시의 주요부는 스타덴섬의 북쪽 대안지구(對岸地區)에 있다.

해마다 있는 노벨상 수상식은 콘서트홀에서 거행되고, 축하연은 시청사에서 베풀어진다. 시가지의 북부에는 1912년에 만들어진 올림픽 경기장이 있고, 동쪽의 스칸센섬에는 노르딕박물관과 유원지가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국의 수도로서 외교활동의 무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핵무기 금지운동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회의가 많이 열리고 있다.

   
   
▲ 국왕 가족

스웨덴에 거주한 인종은 북부 게르만의 여러 민족이었으나, 대부분은 유동적이었다.
BC3000년경 유랑어민과 수렵민들이 스웨덴에 정착, 곡식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그후 500년경에 그 일파인 고트인이 남부의 쇼넨 지방에 정착하고, 600년경 같은 스비아인이 중부의 웁살라 부근에 정착하였는데, 이 두 민족이 후일 융합함으로써 스웨덴인이 형성되었다. 정착 당시의 그들은 소규모의 부족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조선과 항해에 뛰어나 발트해상에서 활약하였다. 그들의 해상활동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9∼11세기였으며, 바이킹(또는 노르만)의 시대라고 일컬는다.16세기에 가톨릭에서 신교로 바꾸었으며, 국민의 87%가 스웨덴국교회(복음루터파)에 속한다.

기후가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으로 수확은 풍부하지 못했으며 광대한 토지에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상호부조나 연대감이 강하다. 지주들은 농업 노동자의 노후나 사망의 보살핌까지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중세에는 유럽대륙으로부터 봉건제도가 들어오면서 귀족, 승려, 상공시민, 농민 4계급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19세기 스웨던은 유럽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변국의 하나였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 산업혁명을 겪은 스웨덴은 19세기 초 봉건제도 붕괴되었으며 1870년 경부터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스웨덴은 높은 공업수준, 완전고용, 원만한 노사관계, 장기간의 평화 등에 힘입어 매우 높은 생활·문화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며 교육·의료·실업보험·연금·노인복지 등 공공서비스는 완전 무료이다.
 

스웨덴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삼권분립제이다.
구(舊)헌법에서는 국왕의 권한이 매우 강대하였으나, 1975년 1월 1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국왕의 지위는 실권이 없는 상징적인 것이 되었다. 1973년 9월 19일 칼 구스타프 16세(Carl XVI Gustaf)가 국왕으로 즉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뉴스인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뉴스인물 번역기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PHOTO NEWS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인물뉴스 기사 및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본사 임직원은 잡지,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과 본사 사규를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04 ~ 2022 뉴스인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mul@newsinmu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허자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42-3 LG 에클라트  |  등록번호 : 경기사0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