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브라질 룰라 대통령내년이 한.브라질 수교 50주년 기념
뉴스인물  |  inmul@newsinmu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8.09.11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정식 이름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대통령 이다.

룰라 대통령은  1940년~50년대에 브라질에서 가장 못사는 곳으로 알려진  브라질의 북동부에 위치한 페르남부크주의  해안 도시 Garanhuns시에서 1945년10월 27일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인과 자식 8명을 남겨둔 채 단신으로 상파울루 외항인 상투스항의노무자로 일하러 간다.

1952년 7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상파울로주 상투스시로 이주했으며  10살을 넘기자 마자 일을 시작한 룰라 당선자는 14살때 정식으로 근로자 자격을 얻어 금속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19세때인 1964년 상파울로의 ABC지역 공장에서 금속공으로 일하다 공장에서 밤샘 선반 작업을 하던 중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기도 했다.

1966년 룰라 당선자는 빌라리스 금속공장으로 직장을 옮겼으며 이 때 맏형 프레이 쉬쿠의 권유로 노조에 가담했다. 그해 그는 같은 근로자였던 첫번째 부인과  결혼했으나 불행히도 출산 도중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아이와 산모가 사망하고 말았다.

 룰라 대통령은 그 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으며, 그 결과 1972년 상 베르나르두 두 캄푸 이 지아데마 금속노조의 제1서기로 당선한다. 1974년 그는 지금의 부인인 마리자를 만난다. 그녀는 한명의 아들을 둔 미망인이었으며, 룰라 당선자도 딸을 둔 아빠였다. 룰라 당선자와 마리자는 결혼 후 지금까지 세 명의 자녀를 더 얻어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1975년에 브라질 최고의 노동조합인 철강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 되었으며, 마침내 1980년 2월 10월 에 정치 단체인 '브라질 노동자당'을 창설했다. 이때 룰라가 '브라질 노동자당'을 창설 했을때에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에게서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
   

1983년에는 단일노조연맹(CUT) 결성에 참여했고 86년 총선에서 브라질 전역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기록하며 하원의원에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89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47%의 높은 지지를 얻고도 낙선하였다.

이어 94년과 98년 대선에서는  25%, 33%의 득표율을 기록해 역사상 브라질의 가장 뛰어난 석학이며, 헤알플랜(Real plan)이라는 인플레이션 억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전직 재무장관 출신의 진보주의 성향의 사회학자인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주에게 당선을 내줬다. 급진적 노동 운동가의 이미지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강경한 노동자라는 이미지가 보수적 기득권층의 반감을 산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1995년 취임한 페르난도 엔리케정부의 최대과제는 물가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집권초기부터 고환율, 고이자율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저성장, 고실업률, 빈부격차 심화 현상이 발생했으며 특히 1998년말 IMF 체제 전환에 따른 긴축경제정책 추진으로 경기침체현상이 심화됐다.

   

그때 브라질은 이미 국가 부도를 향해 치닺고 있었다. 브라질 국민의 대부분이 하루에 2끼 이상을 못먹었으며, 공무원들의 부패와 기득권층과 빈민층의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브라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드디어 2002년 대선, 그때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IMF의 권고안 수용 의사를 밝히고 보수세력과 연합하였다. 온건 좌파로 변신해 네번째로 도전한 2002년 대선이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1백년 이상 정권을 잡아온 엘리트 지도자들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 갈 자신이 있는 철강 노동자"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고, 자본가들과 보수세력, 기득권층의 지지도 얻었다.

룰라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브라질 역사상 최대의 득표율(61.3%)을 얻어 57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3전 4기, 그의 인생은 드라마 였다. 특히, 빈민층과 서민층의 엄청난 지지로 그는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리고, 2003년 1월 그는 대통령 취임 당시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브라질의 경제를 바로 잡기 위해 7개월간의 강력한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을 실시하고 또 공무원의 부패를 엄격하게 단속하였으며, 공무원의 연금을 파격적으로 낮추면서 불필요한 사회비용을 줄였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아퇴치이며, 큰 원인인 브라질의 사회 보장제도를 대폭 수정하였다. 한편 국가 신임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정치 성향을 시장주의로 바꾸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걸음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브라질 국민들의 대부분이 하루 2끼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으며 지금은 브라질 국민의 대부분이 하루 3끼 식사를 할수 있게 되었다. 

   

뉴스인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뉴스인물 번역기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PHOTO NEWS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인물뉴스 기사 및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본사 임직원은 잡지,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과 본사 사규를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04 ~ 2022 뉴스인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mul@newsinmu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허자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42-3 LG 에클라트  |  등록번호 : 경기사0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