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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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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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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명장 최영장군은  출장입상(出將入相)의 대인물이다.

장군은 고려 충숙왕 3년(서기 1316년) 철원군 어운면 하갈리에서 고려조 사헌복정(高麗朝 司憲僕正)을 지낸 최원직(崔元直)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주최씨(東州崔氏 : 東州는 철원의 옛이름)의 시조이자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 공신인 최준옹(崔俊邕)의 11대손이다.

고려사 열전(高麗史 列傳)에 의하면 최영장군은 풍신과 용모가 괴거위대(怪巨偉大)하고    힘이 남보다 뛰어나 일찍부터 외적을 무찔러 무력과 용맹을 떨쳤으며 성품이 충용강직(忠勇剛直)하여 위국위민(爲國爲民)의 대의충절(大義忠節)로서 고려조를 떠받들었으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훈(遺訓)을 좌우명으로 삼아 평생을 청렴(淸廉)으로 일관했다.

서기1388년 철령위설치문제(明에서 우리나라 북변땅 일부를 요동에 복속하겠다는 요구)가 제기되자 차제에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요동정벌을 결정하고 스스로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가 되어 이성계(李成桂 : 右軍都統使)와 조민수(曺敏修 : 左軍都統使)에게 병력 38,000명을 주어 동년 4월 요동 출정(遼東出征)을 명하였다. 명을 받은 이성계는 사불가론(四不可論 : 以小逆大, 夏月發兵, 倭乘其虛, 時方暑雨)을 들어 요동정벌의 부당함을 진언했으나 강명(强命)에 못 이겨 압록강 위화도 (鴨綠江 威化島)까지 행군한 후 시방서우(時方暑雨)를 핑계로 그 즉시(동년 8월) 개경(開京)으로 회군하여 최영장군에게 공료죄(攻遼罪)를 씌워 체포하였다.
 
체포된 장군은 고봉현(高峰縣 : 현 고양시)과 충주(忠州) 등지로 유배당하다가 창왕 즉위년인 서기 1388년 12월 개경으로 압송되어 참수(斬首)당하니 때에 장군의 나이 73세로 경기도 개풍군 덕물산(德物山)에 유택을 모셨다. 조선조 태조 6년(서기 1397년)에 장군에게 공무민공(公武愍公)의 시호(諡號)를 내리고 장군의 넋을 위로하였다.

조선조 태종때 대제학을 지낸 변계량(卞季良)은 장군의 충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一片心應不死, 千秋永與泰山橫” (일편단심은 결코 죽는 일이 없이 천추에 태산과 더불어 솟아 있으리라)

 

**위의 인왕산 국사당 벽에 걸려 있는 무속신 그림이다.
그림은 가로 65㎝, 세로 110㎝ 비단 바탕에 채색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준화원급 수준의 그림으로 사찰의 화승들이 그린 대부분의    무신도와 구별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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