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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30나노 64기가 낸드 플래시 개발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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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0.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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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업계 최소 선폭/최대 용량의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고 10월23일 발표했다.

30나노 기술은 머리카락 두께 1/4000 정도의 초미세 기술이며, 64기가 용량은 세계인구 65억명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640억개의 메모리 젖아장소가 손톱만한 크기에 집적되어 한 치의 오차없이 작동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반도체 중 최첨단 기술이다.

금번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는 작년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개발시, 삼성이 최초로 적용한 CTF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여기에다 기존의 DTP기술과는 차별화된 '삼성의 독창적 DTP' 공정기술을 비롯한 최첨단 설계/소자/Layout 등의 기술을 집대성, 추가로 적용하여 얻은 성과다.

CTF가 기존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전하를 도체가 아닌 부도체에 저장, 셀간 정보간섭을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작년까지만 해도 한계로 알려져 왔던 장벽을 허물고, 40나노급 이하에서의 상용화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한 기술이라면, 금번 개발을 위해 CTF와 함께 적용된  'SaDPT 기술'은 기존 DPT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삼성만의 독창적 DPT 기술"이다.(*DPT : 설비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한계보다 더욱 미세한 패턴을 실현,한 세대 앞선 공정의 제품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기술)

한가지 더 고무적인 사실은 이 기술을 20나노급까지도 확대, 적용함으로써 추가 투자없이도 차세대(30나노)는 물론 차차세대(20나노) 까지의 공정전환과 제품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 역시 20나노/256기가까지 적용 가능한 CTF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의 개발 효과는 다음과 같다.
64기가 낸드플래시 제품으로는 최대 128기가 바이트의 메모리 카드 제작이 가능한데, 이 카드 한 장이면 DVD급 화질 영화 80편(124시간)을 저장할 수 있음은 물론 약 40명 개개인의 모든 DNA유전자 정보를 동시에 저장할 수 있어 금번 개발 제품은 Bio시대 저장 매체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카드 다섯 장으로는 우리나라 국회도서관 220만 권의 장서 저장도 가능하다.

   

기술 개발의 속도전이 가장 치열한 것중의 하나가 바로 반도체 분야다.
D램과 낸드플래시를 포함한 메모리반도체에서 한국은 강자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하지만 최근 일본 등 다른 나라 업체들이 맹렬한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누가 '더 빠르게, 더 작게, 더 싸게'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지를 놓고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업치락뒤치락하고 있으나 아직 한국이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낸시플래시는 단연 한국업체가 기술우위를 점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을 깬 이른바 '황의 법칙'이 한국 낸드플래시 기술을 세계정상에 올려 놓았다.
황창규 사장은 1999년 256메가에서 2000년 512메가로 집적도를 두 배 늘렸다는 발표를 한 후  해마다 9월이면 어김없이 집적도 배증 소식을 전세계에 알렸다. 회로선폭도 해마다 10나노미터씩 줄였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9월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 발표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를 개발하여 발표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30나노 64기가 낸드플래시' 반도체 개발을 발표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로선 세계반도체 시장의 리더임을 확인한 기술적 개가였고, 동시에 황 사장 개인에겐 '황의 법칙'을 8년째 입증하는 성과였던 것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창조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격찬한 CTF(전하를 도체가 아닌 부도체에 저장하는 기술)에다, 신기술(SaDPT)을 접목시킴으로써 오히려 차세대 30나노를 넘어 차차세대급인 20나노급까지 적용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룩해냈다.

황창규 사장은 누구인가?
                                                                                                                                                                                      황창규는 1953 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 미 메사츄세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스탠포드대 연구원으로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인텔의 창업자 앤디 그로브의「Physics & Technology of Semiconductor」라는 책에 심취하면서 반도체에 평생을 걸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6 세, 1989 년 '천재급 인재' 로 삼성에 스카우트 되어 귀국하였다.삼성에 입사한 이유는 '일본을 한번 이겨보기 위하여' 이다.  황창규보다 2 년 앞서 영입된 진대제는 1989 년 16M D 램 개발에 성공하였고 역시 해외파인 권오현 (시스템 LSI 사업부 사장) 이 64M D 램 개발을 진행중일 때 황창규는 1991 년 이사로 승진과 동시에 256M D 램 개발팀장을 맡았다.

 마침내 1994 년 8 월 세계 최초로 256M D 램 개발에 성공하였고이때부터 황창규 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004 년 1 월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겸 메모리 사업부장을 맡고있다.

 황 사장은 구한말 사군자 중 매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 곁을 지켜 더욱 유명했던 화원화가(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에서 일하던 직업화가) 황매산 선생의 친손자다. 조부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술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다.

황 사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온화한 표정이다. 좀체 화를 내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다. 스스로도 “사람들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연이나 대화를 시작하면 그만한 달변이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IT에서 그는 ‘디지털 유목민 정신’(Digital Nomadism)을 외치며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유목민처럼 쉬지 않고 개발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런 도전 정신은 그를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수장으로 우뚝 서게 만든 근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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