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로만손시계 김기문회장노무현 대통령,로만손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남북정상회담에 다녀와
뉴스인물  |  inmul@newsinmu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7.10.07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개성에서 생산된 로만손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역사적인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

남북경협을 통한 민족 공동 번영의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로만손시계를 착용한 이유다.

스위스에 롤렉스, 일본에 세이코가 있다면 한국에는 로만손이 있다.

손목시계는 물론 주얼리와 액세서리 등 패션 아이템의 새로운 브랜드 개발을 통해 오는 2015년까지 매출 3,000억원으로 세계적 수준의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직원 4명으로 시작해서 불과 십수년 만에  국내매출 1위, 해외수출 1위 등 화려한 성과를 거둔 로만손 시계의 김기문 회장. 무거운 샘플가방을 들고 세계를 누비다보니 오른쪽 팔이 늘어나 왼쪽 팔보다 2, 3㎝ 더 길 정도로 성실하게 시장을 개척해 세계 70개국에 수출하는  김기문 회장.

1989년 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국제공항.로만손을 창업한 지 1년째 되던 김 사장은 공항에서 세관원에게 봉변을 당했다. 가방 3개에 가득 든 시계가 검색대에 쏟아져 나오자 그만 밀수범으로 몰린 것이다.김 사장은 명함 등을 보여주며 “시계 장사꾼이고 견본품들”이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세관원은 “샘플이라면 몇개만 들고 다니면 되지 왜 이렇게 많은가.”라면서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그는 “샘플 몇개 보여주자고 비싼 비행기 요금을 내고 먼 길을 오느냐.중동 전역에 만나야 할 거래선이 많다.”고 따졌다.

물불을 안 가리고 발품을 팔면서 비롯된 오해로 밝혀져 밀수범의 누명은 벗었으나 그는 ‘단 한개라도 히트 상품을 만들자.’는 교훈을 얻었다.

그는 청년시절 제대로 직장을 잡기도 전에 잇달아 부모가 돌아가신 뒤인 지난 82년 솔로몬 시계에서 영업일을 하게 됐다. 발로 뛰면서 꽤 실적을 올렸으나 한계를 느꼈다.당시 시계업계는 ‘오리엔트’‘삼성’‘아남’‘한독’ 등의 대기업들이 90% 이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국내 시계업계는 70∼80년대가 전성기로 80년대 후반에는 누구나 웬만한 시계 한개쯤은 차고 다녔다. 신생 회사가 기존의 벽을 뚫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그러나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승부를 걸자는 생각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88년   영업이사로 일하던 김 사장은 시계가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 본연의 기능 이외에 멋쟁이들의 패션 액세서리의 역할로 확대될 것으로 믿고 단돈 5,000만원만 손에 쥐고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사무실 겸공장을 차리고 창업에 나섰다.

당시 일본 업체와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 거래를 진행하며 '품질은 스위스제,가격은 홍콩제’를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구미에 맞춰 최선을 다해 납품했으나 납품 직전에 상대편의 무분별한 단가 인하 요구로 거래가 끊어져 큰 손해를 입기도 했다. “OEM 방식이라는 게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노예처럼 끌려 다니며 일만 해줘야 하는 고약한 상황입니다.
도무지 비전이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그는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는데,한개를 만들어도 내 브랜드로 만들자고 결심했다. 컨셉트는 고급 기호품으로 하고,판매 시장은 해외시장 진출로 정했다.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시계공업단지인 ‘로만시온’에서 착안한 ‘로만손’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해  처음 눈을 돌린 시장은 석유 붐을 타고 있던 중동지역이었다. 중동은 석유만 있을 뿐, 모든 걸 수입해서 쓰는 나라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시계 샘플가방을 들고 처음 찾아간 곳이 두바이였다.  90년에는 미주 지역에 ‘로만손’이라는 이름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커팅글라스시계, 인터넷시계, 3.89㎜ 초박형시계,대형 동전에 시계바늘을 결합한 제품,24시간을 150개 등급으로 나눠 전세계 네티즌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타이머’ 등을 잇따라 개발함으로써 96년 1,000만달러 수출탑에 이어 2002년 2,000만달러 수출탑 수상과 함께 철탑산업훈장을 받는 성과를 이뤘다.

해외출장을 많이 다녀 여권 안쪽에 입출국 승인도장을 찍을 곳이 없어 여권을 일년에 3번 바꾼 적도 있다.

그에게도 좌절과 실패는 있었다.
   

그는 초창기에 브랜드 가치와 해외 수출시장을 중시하다 보니 이익이 생기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외박람회에 쏟아부었다. 스위스 시계의 유명세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익히 알려진 명성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디지만 국제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더불어 김 사장에게도 국제적인 안목이 생기게 됐다. ‘박람회의 매력’에 빠져 참가비용을 무리하게 해외로 빼내다 경쟁업체의 신고로 외화밀반출 혐의도 받게 되었다.세금만 호되게 물고 혐의는 벗었지만 ‘뛰더라도 주변과 함께 뛰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 사장은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처럼 고급품은 좋아하지만 결코 그들처럼 값비싼 제품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중동시장 공략에 몰두했다.매출을 거의 다 쏟아붓다가 그만 걸프전이 터지면서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그 경험은 그에게 오늘날 70개국 수출이라는 시장 다변화에 성공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중동지역에 주력했던 수출 전선을  러시아와 아시아, 유럽, 미주 등지로 확대한 것이다. “걸프전 이후 시장 다변화에 주력한 덕분에 IMF를 무사히 견디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나니까 오히려 주변국인 우크라이나는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 중동뿐만 아니라 러시아,동남아시아,남부 유럽 등 68개국과 거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최초의 커팅 글라스 시리즈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대성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유리가 다이아몬드처럼 강도가 세지 않아 커팅 처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일단 그 기술이 성공해 시계가 출시되자 그야말로 물건을 주고 돌아서면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대히트를 쳤습니다.” 로만손 시계 때문에 유리공장이 삼, 사십개가 생겼을 정도로 중동과 아시아, 국내에서 주문이 폭주했다.

그러나 복제의 귀재라는 홍콩의 시계업자들이 제작한 싸구려 모조 시계가 등장했다.특허권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제품도 사람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끊임없이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 직원의 15%가 연구개발 인력인 데에는 이같은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상황 변화를 빨리 읽고,그때마다 과감하게 자기 변신의 결단을 내린 것이 시장에서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덕분에 로만손은 최근 들어 스위스에 오히려 OEM 제품을 주문하는 회사가 되었다.러시아에선 언론사 조사를 통해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에 로만손의 ‘팔찌 시계’가 꼽히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개성 진출을 제2의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시계산업이 사양업종이 아니라는 사실은 로만손의 놀라운 성장을 통해 입증했으나 기술 및 노동집약 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이 때문에 그는 북한 근로자를 통해 인건비의 부담을 줄이면서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김사장은 “시계는 만드는 사람의 손재주와 감성이 듬뿍 담겨야 명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로만손은 시티즌,세이코,티쏘 등 유명 브랜드들과 어깨를 견주며 오메가와 명품인 메리골드를 추격하고 있다. ‘변화를 이끄는 고급 이미지’이라는 쉽지 않아 보이는 길이 로만손의 목표다.중상류층의 기호를 겨냥했다.

김기문 사장은 회사의 경영 시스템이 그 속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관리되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만이 중소기업이 살아갈 수 있는 핵심 방안이라고 믿고 있다. 때문에 김 사장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 과정에서 배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김 사장은 사람을 직접 만나 부대껴보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그의 직원 관리 스타일에서도 역력히 묻어나 중간관리자에게 직원을 관리할 때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도록 하고 있다. 그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를 뽑아라. 최상의 방법으로 교육해라. 중소기업에서 우수한 인적자원의 소수정예화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생년월일-1955년10월11일
출생지-충북 괴산
 
[학력]   
청주농고졸
충북대 축산학과 중퇴
 
[경력]   
1982 솔로몬시계공업(주) 이사
1988 (주)로만손 대표이사
1998 한국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2004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2007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 개성공단

뉴스인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뉴스인물 번역기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PHOTO NEWS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인물뉴스 기사 및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본사 임직원은 잡지,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과 본사 사규를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04 ~ 2022 뉴스인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mul@newsinmu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허자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42-3 LG 에클라트  |  등록번호 : 경기사0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