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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구 아트 대표이사 심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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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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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개그맨'인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용가리>로 나는 영화감독도 되었다.
이제 새롭게 탄생할 <디워>로 나는 당당히 최고에 도전한다.

야심작이었던 <용가리>가 개봉되자 모두가 실패작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용가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 꽂혀있는 <용가리>를 보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기술이 부족해 마음 조였던 날들.
<용가리>를 만들며 지새운 밤이 며칠이던가.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제 <디워>에서 나는 우리만의 기술을 이루었다.
컴퓨터 한 대 없이 시작한 영화. 직원들과 함께 공부하며 뛰었다.

세계시장으로 진출했을 때, 내게 '두려움'은 없었다.
'고생도 즐거움'이었던 그 시절,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

영화가 가진 무한한 가치를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세계시장에서 <디워>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나에게 늘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기 마련이다.
조건없이 그 대가를 치러준 직원들과 가족                                                                  그리고 지금까지 도와주신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느덧 영화와 10년을 함께 했다.
이제 영화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디워>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해 줄 그날을, 나는 우리 직원들과 손꼽아 기다린다.

나는 세계 시장에서 'D-WAR'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나에게 늘 흥분되는 일이다.

어느덧 영화와 함께 해온 10년 세월.
이제 영화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세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10여년 전쯤에 어떤 소년 잡지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의외의 인물이 한 명 순위에 있었는데  그 의외의 인물은 바로 심형래였다. 1위가 세종대왕, 2위가 이순신 장군, 3위가 심형래, 4위가 에디슨, 5위가 퀴리부인..

그당시 우리나라가 개그맨을 위인으로 인정해주는 사회였나 하면 그것은 아니었고, 사실 그가 세계적인 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화 때문이었다. 비공식 기록이라지만 그당시 심형래씨가 주연한 영화 영구와 땡칠이(감독 남기남)는  그 해 국내 최고 흥행작이었다. 여기서 비공식 기록이라 한 까닭은 그의 영화가 소위 말하는 개봉관에서 상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당시만 해도 개그맨이 만든 어린이 영화는 백화점 강당이나 어린이 회관, 혹은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재상영관 극장에서나 걸 수 있었다.

개그라는 단어가 희미하던 80년대 초반,  코미디언과 울고 웃던 국민들은 개그맨이란 단어로 명칭대는 새로운 물결을 만나게 된다. 주로 만담이나 슬랩스틱 코메디가 대부분이었던 60,70년대에  80년대 개그맨이란 단어를 만든 전유성과 심형래, 이봉원, 김학래, 이홍렬, 주병진등등 신진 개그맨들은  슬랩스틱과 말장난식 콩트를 주로하는 개그맨이었다.

그 당시 폭소대작전과  유머일번지, 쇼비디오자키는 개그맨들의 요람이었다.

그 개그맨중에 심형래씨의 인기는 독보적이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 여로의 코미디버젼
에서 영구역활을 한 심형래씨는 가히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아직도 표정연기의 대가이자
슬랩스틱의 대가인 심형래씨  그 영구말고도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많았다. 동물의 왕국에서 파리, 펭귄등도 있었구 변방의 북소리는 몇일전 SBS 예능프로그램에서 재연까지 했다. 

심형래가 있어서 80년대는 국민들이 즐거웠고 그의 얼굴만 보고도 웃음을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을정도 였으니  그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한 때 그는, 그 자신이 용가리였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한다'는 일갈을 뿜어대며 IMF로 좌절해 있던 대한한국을 일으켜 세울 용가리 통뼈. 대한민국은 그를 찬양했다. 그러다 정작 <용가리>가 개봉하자 그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하더니 급기야 어디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어져버린 지 꽤 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2007년 여름, 디워를 들고 관객앞에 나타났다.

심형래감독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린이들에겐 세계적 위인으로 대접받고, 벤처 붐이 일었을때는 청년들이 본받을만한 신지식인이 되었다가, 2007년 여름에 비로소 욱일승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형래는 알아주는 애연가다. 가장 괴로운 일이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일 정도로 헤비 스모커다. '디 워'(영구아트)의 기자 시사회와 VIP 시사회가 열린 날도 그는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대신 술자리에서 옥수수수염차나 콜라를 얼음에 녹여 마시며 건배한다. 예의상 한 잔 정도는 마실 법도 한데 끝까지 사양한다.


사람 좋아하는 그가 원래 술을 멀리한 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하루 아침에 술을 끊었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지만. 바로 6년 전 자신을 후원해준 한 투자자와의 약속이 그것이었다.


1999년 '용가리' 실패 후 모두가 그를 외면할 때 심형래는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안면이 있는 재력가들을 만나 "한번만 더 도와달라"고 읍소하며 다녔다. 필요하면 무릎까지 꿇었다. 그러나 대부분 "무모한 짓 그만하라"며 말릴 뿐 그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줄기 빛 같은 후원자가 나타났다. 금융업과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김학헌 회장이었다.


당시 심형래의 열정과 능력을 간파한 김학헌 회장은 심형래에게 회식비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줘 심형래를 놀래켰다. 김 회장이 "직원들 사기가 떨어졌을 텐데 우선 이걸로 고기나 사먹으라"고 건넨 돈이 자그마치 1억원이 넘었다.

1백만원짜리 수표인줄 알았던 심형래는 화장실에서 봉투를 열어본 뒤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든 이걸로 일어나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심형래를 후원하기로 약속한 김 회장은 6년간 심형래를 위해 1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돈 뿐만 아니라 힘들 때 진심으로 위로를 해준 사람도 그였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었다.

"당신이 SF 영화를 그렇게 하고 싶다면 술부터 끊어라." 그날 곧장 금주를 약속한 심형래는 지금까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그건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태해지지 않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디 워'가 예상을 깨고 보란듯 흥행하자 김 회장과 심형래는 서로 아무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심형래의 보은도 눈물겹다. 그는 '디 워'의 주인공 제이슨 베어가 내한한 7월 31일 밤, 그를 데리고 김 회장과 그의 직원들이 있는 경기도 사업장에 가 인사를 시켰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너도, '디 워'도 나올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심형래는 '디 워'가 개봉한 1일과 다음날, 휴대폰을 꺼놓고 '잠적'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아마 6년간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며 혼자 집에서 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딸을 외국에 보내고 도곡동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심형래 감독

⊙ 대표이사에 대한 외부평가
* Asia Week / '21세기 아시아 지도자', '컴퓨터와 기술공학 부문 지도자'로  선정
* 영국 SFX지 / 예고편만으로 용가리를 최고등급 평가
* CNN / 'The Best of Producer, South Korea'(1999.7)
* NHK / 'who's who ?' 출연(1999.8 인물집중 타큐멘터리로 40분간 방영)
* 공보처 / 신지식인 1호에 선정 (1999)
* 방정환 재단 / 소파상 예술부문 수상 (1999. 5)
* 15년을 빛낸 연예인에 심형래 선정 (2000. 6 )
* 한국영화 최초로 할리우드메이져 배급사와 '용가리'북남미지역 계약체결 (2001. 3)
*한국영화 최초로 '용가리' 미국 '비디오 영화'대여 순위 1위 기록 (2001. 8)
* 정보통신부 주최 디지털 콘텐츠에 디지털 영상부문 대상 수상. (2003.5)
* 영화 <D-WAR>, 산업자원부 주최 세계 일류 상품에 차세대 일류 상품으로 선정.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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