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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악기 박병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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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1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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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재 영창악기 대표(64)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 부회장 출신’이다. 그는 1969년 현대차에 입사, 35년간 근무하며 수출본부장, 사장을 거쳐 2003년 부회장으로 퇴임했다. 현대차 부회장 시절 그는 ‘자동차업계의 산증인’으로 통했다.그런 박대표가 지난 6월 영창악기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이후 악기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사실상 한평생을 자동차산업에 바친 그가 악기산업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또 한번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각종 부품들 간의 섬세한 조율을 통해 좋은 자동차가 탄생하듯 악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업체 경영과 악기업체 경영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대표 취임 이전 현대산업개발 고문이었던 박대표는 이 회사가 올 초 영창악기를 인수하면서 영창악기와 인연을 맺게 됐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부터 영창악기 경영을 맡으라는 ‘특명’을 받은 것. “안해 본 것 없이 다 겪어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대표는 “영창악기를 경영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키워 보겠다”는 각오와 함께 정회장의 특명을 받아들였다.

박대표는 지난 3월 인수단장에 오르자마자 영창악기 실사에 나섰다. 당시 법정관리 상태였던 영창악기는 한때 생산량 기준 세계 1위를 달렸던 위상이 잔뜩 퇴색한 상황이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창악기는 연간 14만대의 피아노를 생산하며 세계 피아노 시장의 15% 이상을 차지했다. 상업광고에 출연하지 않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이 흔쾌히 영창 광고에 응할 정도였다. 하지만 해외투자 확대에 나섰던 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박대표가 실사에 나설 당시 영창악기는 판매량이 급감해 인천 공장은 한 달에 3분의 1은 가동되지 않았고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자연 품질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 현대차 공장장을 지낸 그의 눈에는 야마하 등 세계적 업체들과의 마감처리 기술 차이가 확연히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 1위 악기업체인 야마하를 견학했다. 야마하의 첨단 생산시설을 둘러본 박대표는 영창악기도 공정자동화로 생산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표로 취임하면서 그는 즉시 인천 공장의 문을 닫고 전면적인 개보수를 하도록 지시했다. 기둥과 프레임을 빼놓고 바닥에서 천장, 벽면까지 공장의 모든 부분을 바꿨다. 제품 생산 공정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라인을 새로 설계하도록 했다. 공정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모두 아웃소싱했다. 그 결과 기존 공장면적의 절반만 사용하면서도 생산효율은 30%나 증가했다.

그는 또 품질향상에도 주력했다. 불량품이 나오면 페인트만 다시 칠하거나 부품만 바꿔 새로 내놓던 기존의 ‘경제적’인 생산방식을 버리고 무조건 폐기 처리하도록 했다. 당장은 손해를 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신뢰로 보상받는다는 믿음에서였다.

비서도 음대출신 뽑아악기를 생산하는 만큼 직원들이 감수성을 갖고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근무환경도 바꿔나갔다. 직원들이 작업복에 숟가락을 지니고 다니다 식사시간에 꺼내 사용하는 중국 톈진공장 식당에 숟가락을 비치해 품위를 높이도록 했다. 서로 바라보며 용변을 보는 중국식 화장실을 개선, 변기마다 일일이 칸막이를 설치했다.

직원들에게는 제조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에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할 것을 주문했다. 인천 공장에 위치했던 본사도 분당으로 옮겼다. 공장과 본사가 함께 있으면 제조자 위주의 사고방식에 빠지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직원들에게만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부터 변했다. 취임 직후 비서부터 음대 출신을 채용했다. 자동차밖에 모르는 ‘악기 문외한’인 자신을 변모시키기 위해서였다. 집무실에 매일 클래식을 틀고 있다. 또 집무실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 현장을 챙겼다. 인천 본사 시절에는 하루의 시작인 오전 7시 품질회의를 생산라인 앞에서 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는 중국 톈진 공장을 찾아간다.

그는 제품 마케팅에서도 현대차 시절 발휘했던 수완을 다시 한 번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에쿠스 전략’이다. 그는 현대차 부회장 시절인 99년 에쿠스를 선보이면서 회사 브랜드 대신 제품 브랜드만을 앞세워 외제차보다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기업 브랜드보다 제품의 개별 브랜드를 강조하는 이른바 ‘브랜드 포커싱’ 전략의 하나다.

박대표는 영창악기의 고급 브랜드인 ‘알버트 웨버’에 이 전략을 도입했다. 알버트 웨버는 150년 역사를 지닌 유럽 악기 브랜드로 영창악기가 80년 독일 웨버가(家)로부터 브랜드를 인수했다. 박대표는 알버트 웨버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최고급 피아노 제품이 1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급 브랜드여서 기존 영창 브랜드로는 제품 이미지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아예 회사 이름을 제품에서 떼고 알버트 웨버 브랜드만을 알려 판매하도록 한 것. 그는 품질 면에서도 알버트 웨버의 고급성을 최대화했다. 알버트 웨버 제작에는 알래스카산 가문비나무만이 사용된다. 알래스카산 나무는 천천히 튼실하게 자라기 때문에 열대지방 나무보다 가격이 5배에 달한다. 박대표는 알래스카산 가문비나무에서도 조직이 치밀한 나이테 북쪽 부위만을 앨버트 웨버 제품 제작에 사용하도록 했다. 재료에서부터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추구한 것. 이에 따라 처음 알버트 웨버를 접한 소비자들은 유럽산 명품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박대표는 “알버트 웨버의 우수성이 점차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고 있어 내년에는 매출이 2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박대표의 경영으로 영창악기는 지난 8~9월에 생산을 거의 중단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수준의 매출을 올해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에는 30% 가량의 매출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박대표의 목표는 단순히 회사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 악기시장 1위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 영창악기의 경쟁자는 야마하 등 세계 굴지의 악기업체들이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경영인생을 악기산업에 건 만큼 현대차 시절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긴다는 목표다.

약력:1942년 경북 문경 출생. 64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68년 현대차 입사. 87년 현대차 캐나다 현지법인 사장. 90년 현대차 부사장. 96년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 96년 한국표준협회 부회장. 97년 자동차부품연구원 이사장. 98년 현대차 부회장. 99년 현대 및 기아차 부회장. 2000년 한양대 산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 현대정보기술 대표이사 회장. 2006년 5월 영창악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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