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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맥주 박문덕 회장두꺼비들고 세계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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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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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너가 직접 M&A를 챙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적정 가격이 2조5천억 원 수준이라는 각종 연구소의 데이터가 이미 나온 상태에서 3조 원이 넘는 가격을 적을 수 있는 판단은 오직 오너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박문덕 회장의 경우는 단순히 오너여서가 아니라 오랜 경영 노하우를 통해 얻은 경험과 배짱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하이트맥주는 공정거래법과 자금 동원력에 있어 관계자들로부터 큰 신임을 얻지 못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들조차 진로인수에 강한 확신을 가지지 못할 정도였다. 진로 입찰이 끝난 후 하이트맥주 관계자들은 “이미 자금동원 계획이나 운영 방안 등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기에 입찰에 응할 수 있었다”라며 “기업을 사고파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보안유지와 정보력이기 때문에 철저히 함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박문덕 회장의 리더십과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문덕 회장은 40년 동안 만년 2위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하이트맥주를 취임 5년 만인 지난 96년에 업계 1위로 끌어올린 사람입니다. 수십 년 동안 사용했던 크라운이라는 브랜드를 한순간에 버릴 만큼 승부사 기질도 가지고 있지요. 사장을 맡은 후 경쟁사 CEO를 찾아가 협박 아닌 협박을 했을 정도로 배짱 역시 두둑합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주류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문덕 회장은 마케팅을 잘 아는 CEO입니다. 마케팅뿐 아니라 기업가적인 성향도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온화한 인상 뒤에 숨어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은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고 있어요. 업무를 진행할 때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지만, 휴일이면 화랑으로 달려가 미술품 감상을 즐길 정도로 여유로움도 지니고 있습니다.” 박 회장의 결단력과 리더십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진로인수전 이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하이트를 총지휘한 리더는 지금의 박문덕 회장이다.


만일 용단과 지략을 갖춘 박 회장이 없었다면 하이트 대첩의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라운이라는 낡은 검을 버리고 하이트라는 새 검으로 승부를 냈을 때만 해도 불과 3년여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업계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하이트맥주 신화 예고는 이미 박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 자리에 올라 상황을 파악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회사가 너무 보수적인 것도 그렇거니와 직원들의 패배 의식이 더 큰 문제였다. 때문에 회사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만 여겨졌다는 것.

 

특이한 것은 자체 판매보다도 상대사의 시장 비율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이 회사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 내외.

이것도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사가 겨우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배려(?)해 준 덕택이다. 말하자면 자사에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상대사가 오히려 최소한의 시장을 보장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마음만 먹으면 경쟁사가 언제라도 시장을 소위 말해 싹쓸이해 버릴 수 있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시장을 보장해 준 속뜻은 사실 다른 데 있었다. 허약 체질의 경쟁사가 시장에 전혀 발을 못 붙여 문을 닫아 버리게 될 경우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제3자가 인수하겠다고 나서 버리면 결국 자기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으로 생명 부지할 정도로만 시장을 유지시켜 주었던 것이다.


사장에 취임하고서 박 회장은 먼저 상대사의 수장부터 찾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시장에서 우리를 죽이지 말아 달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회사를 팔아 버리겠다”는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때 박 회장은 상대사가 더 이상은 시장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박 회장은 상대사를 이기기 위한 묘안 찾기로 와신상담했다.

경쟁사를 앞지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차별화’였다.

이를 위해 회사 내 핵심 인재를 모아 놓고 회사 근처 여관에서 비밀리에 제품 개발 연구에 몰입했다.


이때만 해도 상대사와 비교해 자사의 ‘이미지’가 가장 취약점으로 분석됐다.

맛으로만 승부를 하면 5대5 정도로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지만 자사 상표를 붙이고 나가기만 하면 9대1로 게임이 되지 못했다.


‘크라운’이라는 상표로는 승산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다 박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91년만 해도 지금처럼 마케팅 전략이란 것이 없었다. 흔한 홍보부와 마케팅 부서도 전무했다. 사장이 되고 나서 박 회장은 마케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때 홍보부와 마케팅부도 처음으로 신설했다. 하지만 과거 영업 방식에만 익숙해 있던 나이든 임원들에게 마케팅에 대해 설명하면 “마케팅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신제품을 출시하는 93년까지 2년 가까이에 걸쳐 차별화 전략을 위한 준비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당시 상대사와의 차별화 핵심은 ‘물’이었다. 경쟁사가 페놀로 인해 물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에 주목, 마산 공장에서 100% 암반수를 활용하고 있는 것과 연관해 물로 승부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그렇게 지하수를 강조한 신제품 맥주는 조금씩 잉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품을 출시하기로 한 결전의 93년. 제품 개발을 모두 마치고 이제 출시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박 회장은 결정적 문제에 부딪쳤다. 크라운으로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박 회장으로서는 크라운을 폐기 처분하고 새 검으로 승부를 해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새 검이 바로 지금의 ‘하이트(HITE)’다.

그런데 이사회에서 ‘크라운’이라는 이름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 이를 차마 베어 버릴 수 없었다. 박 회장은 설득에 설득을 했지만 결국 이사회에서 크라운을 빼야 한다는 최종 승낙을 받지 못했다.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한 이름은 ‘크라운 하이트’였다.


박 회장으로서는 2년여 간 애써 고생한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회장은 리더로서의 선견지명을 발휘해 보였다. 크라운을 빼지 말라는 이사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모르게 ‘하이트’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찍어내 시장에 출시하는 결단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만큼 철저한 준비를 한 탓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결정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던 셈이다.

박 회장의 용단은 과연 적중했다. 본격적으로 93년에 하이트라는 이름을 걸고 제품을 출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신문 지상에 전면과 양면 광고를 시작한 것도 하이트 맥주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당시 어떤 기업보다도 획기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이런 마케팅 노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출시 3개월 후부터 본격적으로 성과가 나타나 손이 부족해 부친이 직접 제품을 운반할 정도로 제품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시장 점유율도 점점 상승세를 타서 94년에는 40%대를 육박했다.

하지만 47∼48%까지는 어떻게든 갈 수 있었는데 50% 선을 넘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50%라는 숫자는 박 회장에게는 넘을 수 없는 마의 장벽과도 같았다. 사실 상대사에서는 하이트맥주를 출시한 1년 동안은 별 대응을 하지 않았었다. 하이트의 반란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위협을 느낀 상대사에서도 더 이상 시장을 뺏길 수 없다며 최후 방어 태세를 구축해 갔다. 그런데 96년 8월에 드디어 성역과도 같았던 50% 선이 깨졌다.

 

이날이 정확히 96년 8월 17일. 박 회장은 이날을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대서특필(大書特筆)할 만한 사건 중 하나로 뇌리에 아직도 강렬하게 간직하고 있다.


하이트맥주는 현재 수출국만도 중국, 미국, 일본, 영국, 홍콩, 몽골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 이른다. 하이트는 이미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박문덕 회장의 브랜드 경영에 대한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그는 국내 1위 브랜드에 만족하지 않고 하이트를 버드와이저나 하이네켄 같은 세계 유수 맥주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로 대단하다.


이를 위한 단계적 과정으로 세계 최대 맥주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시장 진출을 확실히 준비하고 있다. 이미 베이징에 공장을 설립해, 중국 시장을 구체적으로 공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박 회장에 의하면 국내 맥주 생산 기술은 이미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 맥주에 대한 인지도가 다소 낮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하이트맥주는 지난 1933년 일제 하에 창립된 국내 최초의 맥주 회사다.

출발 당시의 사명은 조선맥주.


40년 만에 맥주 시장에서 1위 자리의 아성을 깨뜨린 데다, 창사 이래 최대의 매출과 순이익을 얻는 등 샴페인을 터트릴 만도 하다. 그러나 영원한 1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위기 의식을 주문하며,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변화관리 경영 혁신을 선언했다. 박 회장은 IMF를 겪으면서 문어발식 신규 사업보다는 주류 전문 기업으로 한 분야에 매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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