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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시호,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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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8.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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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고려 의종 22년, 1168 ~ 고종 28년, 1241)는 고려 전기와 후기의 분수령이었던 무신 집정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살아간 신흥 사대부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유교적인 현실관을 견지하면서도 민속신앙과 선도사상(仙道思想)에도 깊은 관심을 지녔으며, 마침내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처럼 그는 폭넓은 사상과 신앙의 층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인정받았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고, 국가적 요청에 부응하여 나라를 빛내는 ‘이문화국(以文華國)’의 이상을 실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동방의 시호(詩豪)라고 불리는데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훌륭한 천품을 바탕으로 국문학사상 고려 당대까지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의 개인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남기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방대한 시문은 한국한문학의 사적 전개에 있어 그 양식의 선택에 있어서나 내용상의 다양성에 있어서나, 작가의식의 확고함에 있어서나, 특히 논리성을 중시하는 서사적 성격, 그리고 시학(詩學)에 새로운 입장을 수립한 점에서 독특한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또 그는 당대 고려 문풍의 추세를 수용하면서도 개성적인 어의창신론(語意創新論)을 주장하였고, 중국문학의 수용, 변개와 더불어 당대 우리 문학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느 쪽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의 문학사상을 세워 나갔다.

특히 이규보는 ‘시마(詩魔)에 붙들려 창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고백처럼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수많은 실제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사상을 펼쳐보였기에 그의 문학사상이 가지는 의의는 더욱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 안에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폭 넓은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고, 이를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젊은 시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동명왕의 이야기를 <동명왕편>이라는 장편 서사시로 이루어낸 것은 이규보의 민족의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또한 이규보의 관심사는 당대 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비참한 실정에 까지 이르렀다. 특히 그는 당대 무신 집정기가 내포하고 있었던, 대내 · 외적인 온갖 시련과 난제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문학과 정치를 통하여 비판적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실천의지를 보였던 중세 지식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문광부자료참조,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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