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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50권 편찬, 김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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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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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무열왕의 후손으로 고려 문종 29년(1075)에 경주에서 태어나 의종 5년(1151)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예종, 인종의 학문 숭상기에 중심적 학자로서 유학의 학문 발전과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통하여 위기에 처한 왕조의 안정, 그리고 고대 역사학을 극복하여 중세의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경주 김씨로 증조 김위영은 경주의 향리인 주장(州長)이었으며, 처음 중앙에 진출한 아버지 김근(金覲)에 이어 김부식은 1096(숙종 원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안서대호부 사록참군사에 초임되었다.

그는 학문 중흥정책을 쓴 예종과 인종에게 청연각에서 '서경', '주역'을 강하였고, 왕의 외조인 이자겸이 왕에게 칭신(稱臣)하지 않도록 하자는 건의에 대해 중국의 예를 들어 조목조목 반대하기도 하였다.

왕위를 노리던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후에는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승진 되어 국정을 논하는 재추의 중심 관료가 되었으며, 다음해 인종 6년(1128) 3월 한림학사 승지로 임용되어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그 해 12월에는 판병부사(判兵部事)에 임용되어 군사권을 장악하였다. 인종 12년에는 묘청이 금국정벌론과 칭제건원을 주장하면서 서경에서 인종 13년(1135)에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중군 원수에 임명되어 그 진압책임을 맡아 이듬해 2월에 이를 완전 진압하였다. 

인종 18년(1140)에는 국왕에게 시폐 10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사면령을 반포하자 김부식은 정년 18개월을 남겨두고 관직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김부식은 이후 인종의 도움을 받아 신진관료 8명과 함께 삼국사기 50권을 편찬하였으며, 이는 한국의 중세의 역사관을 정립한 역사서로서 유교적 도덕사관, 문헌중심주의 역사학, 합리적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자료:문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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