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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영웅,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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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8  17: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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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밀턴 쇼는 자신을 한국인이라 생각했고 한국을 조국으로 여겼다.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쳐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었으며 한국인 친구들도 많았다.

미 해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상륙작전에도 참전했던 쇼 대위는 1947년 전역 후, 마음으로 늘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 군정청 소속으로 ‘조선 해양경비대사관학교(현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을 가르쳤다.

1950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공부 중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미 해군 대위로 재입대, 한국에 돌아와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가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한국이 제2의 조국이라는 점과 자신이 직접 가르친 해군사관생도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 장군의 부하로 참가하여 서울탈환작전에도 참가하였다. 하지만 1950년 9월 22일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 중이던 공산군에게 저격당해 끝내 산화하였다.

평생 한국을 위해 봉사한 부모님과 함께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그의 묘비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의 한국 사랑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이 뜻을 모아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를 세웠으며, 대전 목원대에는 해밀턴 쇼를 추모하는 교회(Chapel)가 세워졌으며, 2010년에는 서울시 은평구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건립했다.

해밀턴 쇼 대위는 우리 정부로부터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 받았으며, 2015년 6월 “호국영웅 우표”의 인물로도 선정되어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관련 책으로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윌리엄 해밀턴 쇼” 가 발간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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