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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이범석(鐵驥 李範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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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8  17: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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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이범석은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만 15세때 여운형과 함께 두만강 철교를 도보로 건너 중국으로 망명한다.

1919년 손문의 천거로 운남육군강무학교 기병과를 수석졸업하고, 이후 북로군정서로 옮겨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과 함께 1주일 동안 청산리 계곡 일대에서 10여 차례 교전 끝에 일본군을 괴멸시키는 전과를 거둔다.

1933년에 중국 뤄양 군관 학교 한인 장교 대장,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 참모장 등을 지내면서 조국 독립에 힘쓰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해방후 한국광복군 제2지대장 자격으로 상하이에 머물던 철기는 이승만의 종용으로 1946년 6월 귀국한다. 그는 300명으로 조선민족청년단(족청)을 조직, 2년만인 1948년 10월 당시 남한 인구 2000만 명의 6%인 12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성장시킨다.

족청은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추구함으로써 국수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지도력을 경계한 이승만에 의해 족청 해산령이 내려지고 지청천의 대동청년단과 함께 이승만을 총재로 하는 대한청년단에 통합되고 만다.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국무 총리,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등으로 활약하였다.

1952년 여름 내무부장관으로 '부산정치파동'에 휘말리고, 제3대와 제4대 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승만은 철기를 이용하면서도 견제했다. 5·16쿠데타 이후 67년에는 윤보선 유진오 백낙준 등과 함께 4자회담을 성사시켜 통합야당 신민당 출범에도 기여했다.

1963년에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복장 (지금의 건국 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1972년 5월 11일 만 72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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