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
해상왕 장보고 장군
뉴스인물  |  inmul@newsinmu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1.09.03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해상왕 장보고 장군(海上王 張保皐 將軍)

   

?~846(문성왕 8)
자 (字)는 정집(正集)이요. 어릴 때 이름은 궁복(弓福)인데 또 다른 이름은 궁파(弓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말을 타고 창을 쓰는 데 대적할 자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당나라로 건너가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 소장(小將)이 되었다. 당에서 귀국한 뒤 828년(흥덕왕 3) 왕에게 청해(淸海)를 진수(鎭守)할 것을 청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 군사 1만 명을 모아 청해진(淸海鎭 )을 건설했다.

장보고의 군사들은 황해로 출동해 해적을 소탕, 해상을 안정시키고 나서 당과 일본을 잇는 중계 무역에 뛰어들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재일신라인 사회와 재당신라인 사회를 연결하는 무역망을 구축했고, 이러한 중계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장보고는 단순히 삼국의 특산물을 사고파는 중계 무역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상인들이 당나라까지 가져온 서역의 물품들을 신라와 일본에 전했고, 당시 인기 있었던 자기를 직접 청해진에서 생산해내기도 했다.
 

그는 무역활동을 통해 확보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중국의 산둥성[山東省] 원덩현[文登縣] 츠산춘[赤山村]에 법화원(法華院)이라는 절을 세웠다. 이곳에는 500석을 수확하는 장전(莊田)이 속해 있었는데, 많은 승려가 머물며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었고, 청해진과의 연락기관 구실도 했다.

그는 경제력과 무력을 배경으로 중앙의 권력쟁탈전에도 개입하게 되나 결국 846년(문성왕 8)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되었다.

   
▲ 장보고 동상(중국 적산 장보고 기념관)

   

뉴스인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뉴스인물 번역기
여백
여백
여백
포토뉴스 PHOTO NEWS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인물뉴스 기사 및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본사 임직원은 잡지,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과 본사 사규를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04 ~ 2022 뉴스인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nmul@newsinmu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허자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42-3 LG 에클라트  |  등록번호 : 경기사0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