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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1대 임금,영조 (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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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4.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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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금인 영조(재위 1724∼1776)의 초상화이다. 영조는 심각한 당파싸움에 대하여 탕평책을 실시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사회를 안정시켰으며 스스로 학문을 즐겨 문예 부흥기를 이루었다.

이 그림은 51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로 68㎝, 세로 110㎝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머리에는 임금이 쓰는 익선관을 쓰고, 양어깨와 가슴에는 용을 수놓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돌고 있고 두 눈은 치켜 올라갔으며 높은 콧등과 코 가장자리, 입의 양끝은 조각처럼 직선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슴에 있는 각대 역시 위로 올라가 있고, 옷의 외곽선을 따로 긋지 않는 등 조선 후기의 초상화 양식이 보인다.

이 초상화는 영조 20년(1744)에 장경주, 김두량이 그린 그림을 1900년에 당대 일류급 초상화가들이 원본을 보고 그린 것이다. 비록 원본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원본을 충실하게 그린 것으로 현존하는 왕의 영정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영조대왕(1694∼1776, 재위(在位) 1724∼1776)은 조선왕조 중기의 왕으로 문예부흥 등을 일으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숙종의 4남으로 자는 광숙(光叔), 호를 양성헌(養性軒)이라 하였다.

영조는 재세시(在世詩) 7차례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는데(모두 13점), 지금은 20세때(1714)의 초상화(정기군초상(庭祁君肖像)·진재해등(秦再奚等))와, 50세때 초상화를 1900년에 채용신(蔡龍臣)(1850∼1941)과 조석진(趙錫晉)(1853∼1920)이 함께 이모(移模)한 초상화(영조대왕어진(英祖大王御眞))만 남아 있으며 창덕궁(昌德宮)에 소장되어 있다.

50세때(영조 20, 1744) 그린 초상화는 장경주(張景周)· 김두량(金斗樑) 등이 제작했던 것으로 6·25동란 때 소실되었다. 화상(畵像)은 익선관을 쓰고 황룡(黃龍)을 수놓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치켜 올라간 봉안(鳳眼)과 도화색(桃花色)의 안면(顔面), 잘생긴 수염, 정성껏 그린 의습(衣褶) 등이 어진(御眞)의 진면목(眞面目)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세의 홍안(紅顔)청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연잉군초상은 불행하게도 6·25동란때 한쪽이 불탄 반소품(半燒品)이다. 다행히도 상용(像容)쪽은 많이 남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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