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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 맹사성 (古佛 孟思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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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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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孟思誠)은 고려 공민왕 9년(1360) 온양(溫陽)에서  고려 수문전제학  맹희도와 흥양 조씨 부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고려 명장인 최영(崔瑩)의 손녀 사위이다.

1386년(우왕 12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으며 1406년 이조참의·예문관제학을 거쳐 이듬해 진전사(進箋使) 시종관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한성부윤이 되었다.
1416년 판서(判書),  1417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고 1419년(세종 1년) 이조판서로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였다.

 68세가 되던 1427년(세종 9년)에 마침내 우의정이 되었다. 같은 날 황희는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1431년(세종 13년) 9월 황희는 영의정, 허조는 우의정, 맹사성은 좌의정이 되었다.고불 맹사성은  긴 관직생활 동안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해 덕망이 높았으며 명재상과 청백리로  이름을 남겼다.

태종실록, 고려사, 팔도지리지, 신창경제육전 편찬에 깊히 개입했으며 특히 우리 고유 음악인 향악에 조예가 남달라 조선 초 우리 음악의 기초를 닦았다.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 한가한 세월을 보낼 때 지은 '강호사시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은  충의 사상(忠義思想)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부모님 산소를  성묘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선비와의 ‘공(公)',‘당(堂)’논쟁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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